대구사료총서
| 자료명 | 서지 | 내용 | 상세보기 |
|---|---|---|---|
| (대구사료총서1) 국역 대구부읍지 *부록:경산현, 현풍군, 칠곡부읍지 |
|
대구는 오랜 기간 영남의 중심지였고, 대구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으로 남겨 왔다. 1899년 편찬된 『대구부읍지』는 현재 8종만이 남아있는 대구읍지 중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구읍지로, 대구부의 역사, 지리적 여건, 지역민의 현황, 지역의 문화유산, 지역의 제반시설 등 19세기 대구의 모든 정보가 총 망라되어 있다. 『대구부읍지』는 당시 대구의 실상과 현황, 그리고 대구의 역사와 전통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상세보기 |
| (대구사료총서2) 대구민단사 |
|
대구일본거류민단은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자치를 위해 1906년 결성되어 1914년까지 지속된 단체이다. 당시 대구의 일본인들은 ‘구태’를 이유로 조선의 전통을 해체하고 일본의 ‘근대’를 이식하였다. 대구민단의 역사는 전통도시 대구가 해체되어 식민도시로 전환되는 과정이며, 조선인의 도시 대구가 일본인의 도시로 재편되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이다. | 상세보기 |
| (대구사료총서3) 대구부사례 |
|
이 책은 겉표지에는 “영남 대구 읍사례(嶺南 大邱 邑事例)”로, 속표지에는 “대구부사례(大邱府事例)”로 표기되어 있다. ‘대구부’의 예산운영과 관련한 내용이 수록된 것으로, 사무분장과 수입 및 지출 등 재정운영의 내역을 수록한 재정관계서이다. 대구부의 재정 현황을 중심으로 한 사례를 규정하여 각방(各房)과 각색(各色)별로 항목을 구분하여 작성하였다. | 상세보기 |
| (대구사료총서4) 조선 향토지리의 실례 : 대구편 |
|
당시 대구의 인문지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1930년대 제국주의 일본의 내셔널리즘 교육과 식민지 교육정책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이슈였던 ‘향토지리’의 관점에 따라 ‘대구 분지’의 지형과 기후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경작 및 취락 상황과 특징, 대구 인근 ‘근교’ 지역 정보를 담고 있다. | 상세보기 |
| (대구사료총서5) 영영사례 : 존경각 및 규장각 소장본편 |
|
경상감영의 행정·재정 운영 전례를 정리한 업무편람서로, 대구가 경상감영의 소재지였던 시기에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의 행정·재정 구조를 보여주는 사료이다. 현존하는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존경각본’과 가장 늦은 ‘규장각본’을 함께 번역하여 구체적인 운영 양상과 약 140년에 걸친 변화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상세보기 |
| (대구사료총서6) 경북요람 |
|
1910년 일제강점기 초기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조선농사시찰단’을 위해 제작된 지역 안내서로, 대구와 경상북도를 이주와 농업 경영에 적합한 공간으로 소개한 자료이다. 당시 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편, 일본이 자원 수탈을 위해 정리한 자료이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상세보기 |
| (대구사료총서7) 대구요람 |
|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된 1920년에 발간한 책자로, 축적된 통계와 정보를 통해 대구의 경제, 특히 상공업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록의 상공인명록은 대구 시내를 중심으로 한 상업 구조를 보여준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 정리한 자료인 만큼 비판적인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상세보기 |
최근수정일
2026.05.19

